연산군이 조선의 폭군으로 불리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어머니 폐비 윤씨의 죽음과 관련된 사건들이 그의 정치적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무오사화와 갑자사화 같은 대규모 숙청이 조선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알고 싶습니다.

교과서나 학습 만화에선 간단하고 외우기 쉽게 가르치기 위해서, 사극에선 극적 연출을 위해 갑자사화를 "연산군이 자기 어머니의 죽음을 알게 된 뒤 복수하기 위해서 갑자사화를 벌이고, 이후 타락해서 폭주하였다."라고 해석하지만 생애 문서를 보면 알듯이 연산군은 실제로는 어머니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월탄 박종화 선생의 금삼의 피라는 소설이 연산군의 폭군이 된 이유로 자기 어머니의 피 묻은 비단 손수건에 있다고 쓰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는데 금삼의 피는 박종화 선생의 개인적인 소설 내용일 뿐입니다. 현대에 와서 사학계에서 연산군의 갑자사화는 어머니의 죽음뿐만 아니라 권력 강화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연산군이 마냥 멍청하고 복수만 바란 폭군이 아니라 왕권 강화를 꿈꾸며 계획해왔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연산군은 폐위된 뒤 조선 군주 체제에 폭군의 절대적 기준을 세운 왕이며 조선 최초의 폭군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연산군이 재위 10년째의 갑자사화 기간에 보인 옥사의 잔혹성과 규모는 경악스러울 정도입니다. 오죽하면 사관이 "성품이 포악하고 정치를 가혹하게 하였다. 예로부터 난폭한 임금이 많았으나 연산군만큼 심한 자는 아직 있지 않았다."라고 평했습니다.

연산군은 잔인한 폭군의 이미지를 가지고 태어난 왕이었습니다.